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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지리산국립공원(智異山國立公園)은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경상남도 하동군, 산청군,함양군, 전라남도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시 등 3개 도, 5개 시, 군, 15개 읍, 면에 걸쳐 있는 곳으로 그 면적이 440,517㎢에 이르고 있으며, 이를 환산하면 무려 1억 3천평이 넘는 면적이 된다. 이는 계룡산국립공원의 7배이고, 여의도 면적의 52배 정도로 20개 국립 공원 가운데서 육지 면적 만으로는 가장 넓다. 지리산에서 발원한 물이 덕천강, 황천강을 이루고,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20여개, 재가 15곳에 이른다. 또 지리산에서 솟는 샘과 이름을 갖고 있는 전망대, 바위의 숫자만도 각각 50여개, 마야고와 반야도사, 호야와 여진 등의 설화에 이상향과 신선의 전설을 안고 있는 지리산. 한때 지리산의 350여 군데에 절과 암자가 있었다는 기록, 국보만도 7점, 보물 26점에 문화재와 주요 사적지, 민속자료까지 헤아리지 않아도 지리산은 그 자체로서 이미 충분한 산이다.

대원사계곡

기암괴석을 감도는 계곡의 옥류소리, 울창한 송림과 활엽수림을 스치는 바람소리, 산새들의 우짖는 소리가 어우러지는 대자연의 합창을 들을 수 있는 계곡이 대원사계곡이다. 30여리에 이르는 대원사 계곡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봉과 하봉을 거쳐 쑥밭재 와 새재 ,왕등재, 밤머리재로 해서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산자락 곳곳 에서 발원한 계류가 암석을 다듬으며 흘러내린다. 조그만 샘에서 출발한 물길이 낮은 곳을 향해 흐르면서 신밭골과 조개골, 밤밭골로 모여들어 새재와 외곡마을을 지나면서는 수량을 더해 대원사가 있는 유평리에서 부터 청정 비구니가 독경으로 세상을 깨우듯 사시사철 쉼없이 흐르는 물소리로 싶은 산중의 정적을 깨운다.

황매산철쭉

태백산맥(太白山脈)의 마지막 준봉인 황매산은 고려시대 호국선사 무학대사가 수도를 행한 장소로서 경남 산청군 차황면 법평리 산1번지의 황매봉을 비롯하여 동남쪽으로는 기암절벽으로 형성되어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울만큼 아름답다. 정상에 올라서면 주변의 풍고아이 활짝 핀 매화꽃잎 모양을 닮아 마치 매화 꽃 속에 홀로 떠 있는 듯 신비한 느낌을 주어 황매산이라 부른다. 황매산의 황(黃)은 부(富)를, 매(梅)는 귀(貴)를 의미하며 전체적으로는 풍요 로움을 상징한다. 또한 누구라도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하면 1가지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하여 예로부터 뜻 있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구형왕릉

가야 10대 임금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는 돌무덤으로, 구형왕은 구해(仇亥) 또는 양왕(讓王)이라 하는 데 김유신의 할아버지이다. 521년 가야의 왕이 되어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다. 일반무덤과는 달리 경사진 언덕의 중간에 총높이 7.15m의 기단식 석단을 이루고 있다. 앞에서 보면 7단이고 뒷면은 비탈진 경사를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평지의 피라미드식 층단을 만든 것 과는 차이가 있다. 무덤의 정상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돌무덤의 중앙에는 ' 가락국양왕릉 ' 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고 그 앞에 석물들이 있는데 이것은 최근에 세운 시설 물이다.

경호강비경

지금의 경호강은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강점에서 진주의 진양호까지 80여리(약32km)의 물길을 이르는 말이며 경호강은 국도 3호선과 진주에서 함양간 고속도로와 나란히 하기 때문에 차를 이용하시는 분들도 쉽게 아름다운 경호강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곳 강폭이 넓은데다 큰바위가 없고 굽이굽이에 모래톱과 잔돌들이 퇴적돼 있어 유속은 빠르 면서도 소용돌이치는 급류가 거의 없어 신종 수상 레저인 래프팅의 조건을 잘 갖추고 있으며 한강 이남에서는 유일한 래프팅 장소이기도 하다. 맑은 강물에 배를 띄우고는 굽이치는 물결따라 요동치는 배를 부여잡고 코스를 잡아나가는 래프팅은 젊은이들의 모험심과 경호강의 거침없는 흐름이 일치된다 할 수 있어 래프팅을 위해 산청 경호강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남사예담촌

맑은 강물에 배를 띄우고는 굽이치는 물결따라 요동치는 배를 부여잡고 코스를 잡아나가는 래프팅은 젊은이들의 모험심과 경호강의 거침없는 흐름이 일치된다 할 수 있어 래프팅을 위해 산청 경호강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옥은 수천 년의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민족의 정체성에 뿌리를 두고, 그 시대의 삶의 양식을 반영하며 변화해 왔습니다. 한 민족의 문화가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 현재를 딛고 미래로 이러지는 것이라면, 그 변화는 언제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어야 할 것 입니다. 농촌 전통테마 마을 남사 예담촌은 변화하는현재속에서 옛 것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가는 배움의 휴식 터로 자리하고자 합니다. 한옥풍경이 어우러진 전통문화 배움터 남사 예담촌에 오셔서 배움이 있는 휴식을 충전해가시기 바랍니다.

정취암조망

대성산적의 절벽에 자리한 정취암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정취암 탱화가 유명한 절이다. 기암절벽에 매달린 정취암은 옛 단성현(丹聖縣) 북방 40리에 위치한 대성산 (大聖山)의 기암절벽 사이에 자리한 절로 그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간다하여 옛부터 소금강(小金剛)이라 일컬었다. 바위 끝에 서서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면 천장 만장 높은 곳에서 하계를 내려다보는 시원함과 함께 적막과 고요속에 속세를벗어난 느낌이 든다.

남명조식유적지

조선 중기의 유명한 유학자인 남명 조식의 유적이다. 조식 선생은 많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냈다.이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院里)에는 덕천사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년(1561)에 세웠고, 순조 18년(1818)에 고쳐졌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이다. 덕천서원은 선조 9년(1576)에 세웠고, 앞면 5칸, 옆면 2칸의 현재 건물은 1926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세심정은 선조 15년(1582)에 처음 세웠다.

동의보감촌

지리산과 동의보감의 고장 산청은 류의태, 허준 선생 등 수많은 명의를 배출한 곳이며, 지리산 약초의 효험이 널리 알려진 전통 한방의 본 고장이다. 왕산과 필봉산의 정상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에 한방을 테마로 조성되는 전통한방 휴양관광지는 향후 세계적인 휴양관광지로 발돋움을 할 채비를 하고 있으며 '산청지리산약초 연구발전특구' 지정으로 약초전시장과 판매장이 설치되고 매년 5월 초에는 한방에 관한 볼거리도 다양하다.